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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실한 스승을 찾기는 어렵다, 5부 중 3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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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면, 누군가 편지를‍ 써서 이렇게 말했어요.‍ 『왜 스스로를‍ 생불이라고 하나요?‍ 제자들이 쓴 글을‍ 못 보셨나요?』‍ 예를 들면 그런 식이죠.‍ 그럼 나는 깜짝 놀라죠.‍ 『네? 그래요. 그들이 썼고‍ 나도 봤어요』‍ 나는 깜짝 놀라서‍ 직접 확인해봤어요.‍ 『아, 이렇게 된 거구나』‍ 난 쑥스러움을 많이 타고‍ 그런 건 좋아하지 않아요.‍ 안 봤다고 할 순 없었죠.‍ 물론 내가 보는 방식은‍ 달라요.‍ 보지만 안 본 것과 같죠.‍ 그래서 사람들의 비난도‍ 견딜 수 있는 거죠.‍ 사실 칭찬도 별 의미 없어요.‍ 사실 내겐 둘 다 같아요.‍ 한데… 그건 나를 정말‍ 쑥스럽게 만들죠.‍ 내 입으로 『이봐요! 난 부처예요』라고 말은 못하죠.‍ 내가 말 안 해도 제자들이‍ 말할 거예요. 안 그래요?‍ 제자들을 내보내면‍ 홍보 문구를 잔뜩 쓰죠.‍ 내가 나를 광고하는 셈이죠.‍ 그렇게 표현하지 않을 거면‍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겠죠.‍ 『평범한 여승이 와서 설법을 합니다』‍ 그럼 누가 와서 듣겠어요?‍ 보시를 하라고 할까 봐‍ 걱정할 수도 있어요.‍ 대부분의 승려들은 나가서‍ 절을 짓는 데 보시를 하고‍ 공양을 올리라고 하잖아요.‍ 설법을 하기도 전에‍ 법회장 밖에‍ 보시함을 놔두죠.‍ 일단 불교에 귀의하면‍ 보시금 등을‍ 공양해야 해요.‍ 그래서 사람들은 겁을 먹죠.‍

때론 일반 승려들이‍ 설법을 하는데‍ 몇 명이나 가서 들을까요?‍ 아주 적잖아요?‍ 사람들이 많이 오는 경우는‍ 대개 설법하는 사람이‍ 생불이라는 등 그렇게‍ 공언했기 때문이에요.‍ 안 그런가요?‍ 그래서 사람들이 오는 거죠.‍ 나도 그렇게 나가서‍ 내가 생불이라거나‍ 무슨 부처라고 한다면‍ 정말 쑥스러운 일이겠죠.‍ 그래서 난 설법을‍ 안 하려 해요.‍ 그런 걸 공공연히 하고‍ 싶진 않아요. 나는 정말‍ 쑥스러움이 많거든요.‍ 허나 아무 말도 안 하면‍ 사람들이 와서 듣고 알려고 하지 않겠죠.‍ 그렇죠? (네)‍ 그런데 공공연히 말하면‍ 사람들은 우리가‍ 광고를 한다고 하겠죠.‍ 뭘 해도 옳지 않다는 거죠.‍ 광고를 하면‍ 먼저 의심부터 해요.‍ (그렇습니다)‍ 근데 광고를 안 하면‍ 더욱 의구심을 품죠. 『자신을‍ 누구라고 생각하는 거지?‍ 내가 왜 설법에 가야 하지?‍ 시간 낭비일 뿐이야』‍ 너무 많아요.‍ 너무 많은 승려나‍ 일반인들이 영적 수행자라고‍ 주장하잖아요.‍ 『우릴 속이는 것뿐이야,‍ 쓸데없어‍. 다신 가지 말자』‍ 우리가 『이분은 특별한‍ 생불』이라고 하거나‍ 『무슨 부처』라고 하면‍ 사람들은 광고를 한다고 하죠.‍ 의심부터 해요.‍ 그러곤 와서‍ 머리 모양과 구두, 입은 옷을 살피죠.‍ 내가 말한 것들은‍ 다 잊어버리고요.‍ 그러니 소용없어요.‍

머리를 삭발하면‍ 기독교 신자들이 안 오고,‍ 목사 옷을 입으면‍ 불교 신자들이 떠날 거예요.‍ 머리를 기르면 이럴 테고요.‍ 『여승이 환속하려나 보군.‍ 그게 무슨 수행이람?』‍ 내가 뭘 하든‍ 그건 늘 『틀린』 게 되죠.‍ 청바지 입고 연단에 서면‍ 이럴 테죠. 『무슨‍ 영적 수행자가 저렇지?‍ 수행자가 아닌 게지!』‍ 못 믿겠다면‍ 내가 청바지나 미니스커트를 입은 사진, 여러분처럼 그런 치마를‍ 입은 전신 사진들을‍ 거리에 붙이고‍ 『칭하이 무상사의 강연』이라고 써봐요.‍ 과연 누가 올까요!‍ 내가 여러분과 수영할 때‍ 등이 좀 보이는‍ 수영복을 입었는데‍, 그걸로도 야단법석이었죠.‍ 다음엔 미니스커트를‍ 입고 나갈 게요.‍ 수영하러 갔는데‍ 수영복을 입으면‍ 안 된다고 하니‍ 이 세상은 너무 터무니없어요.‍ 여러분은 내가 나가서‍ 사람들에게 날 보여주고‍ 사람들이 그런 눈으로‍ 날 보게 하라고 하는데‍ 뭐하러요?‍ 때론 우리 입문자들도‍ 믿음이 약한데,‍ 나를 전혀 이해 못 하는‍ 외부인들은 말할 것도 없죠.‍

신실한 스승을 찾긴 어려워요.‍ 이미 말했지만요.‍ 정말이지, 산에 있을 땐,‍ 내 마음이 완전히 고요했어요. 내려오고 싶지 않았죠.‍ 내 말을 못 믿겠다면‍ 직접 가서 봐요.‍ 그런 조용한 곳에서 지내면‍ 마음이 텅 비어요.‍ 『고통』이란 말도‍ 떠오르지 않는데‍, 어떻게 사람들의 고통을‍ 이해하겠어요.‍ 이해 못 하죠.‍ 당시엔 이렇게 생각했죠.‍ 『세상엔 아무 일이 없구나』‍ 정말로 놀라워요.‍ 누가 수행이 잘 안 된다면‍, 시간이 날 때‍ 건조 식품과 쌀 등‍ 간단한 것들을 챙기고,‍ 따스한 옷 몇 벌과 텐트를‍ 준비해서 조용한 장소를‍ 찾아 몇 주 동안‍ 영적 수행을 하면‍ 변화가 있을 거예요.‍ 원한다면 책, 좋은‍ 경전도 가져가고요.‍ 원하면 내 책도 좋아요.‍ 경전을 읽은 다음‍, 명상을 하세요.‍ 직접 음식을 만들고‍, 수영도 하고, 산책도 하고,‍ 다시 돌아와서 명상하고요.‍ 번뇌에서 벗어나세요.‍ 그럼 자신 안에 있던‍ 탐욕과 분노, 무지가‍ 얼마나 줄었는지 알 거예요.‍ 성욕도 역시 바뀌고‍ 사라질 거예요.‍

여러분은 왜 그렇게‍ 분투를 할까요?‍ 그건 상황과 관련 있어요.‍ 그러니 자신만‍ 너무 탓하지 말아요.‍ 상황이 다를 뿐이니까요.‍ 그러니 내 시각에서 보면‍ 누가 좋거나 나쁜 게 없어요.‍ 다만 상황 때문이에요.‍ 가령, 때로‍, 승려와 속인은 같아요.‍ 홀로 조용히 있으면‍ 문제가 없죠.‍ 여자를 안 본다면요.‍ 허나 여자를 보면 달라지죠.‍ 보는 것만으로도요.‍ 가까이 가지도 않고‍, 손 발 등을 만지지 않아도요.‍ (네)‍ 그렇죠? (네)‍ 그러니 알겠지만‍ 군대나 교도소에서는‍ 남자와 여자가‍ 따로 지내게 해요.‍ 남녀 출가자도 마찬가지죠.‍ 옛날부터‍ 그런 식이었어요.‍ 그래서 예전에‍ 석가모니불은 여자를‍ 안 받아들이려고 했어요.‍ 자신을 걱정해서가 아니고,‍ 남녀간의 화학 작용의‍ 힘을 잘 알았기 때문이죠.‍ 음양의 두 육신은‍ 서로 달라요.‍ 화학 작용이‍ 일어나게 마련이고,‍ 남녀가 가까이 있으면 반응이 생겨요.‍ 그냥 그렇게 되죠.‍ 한쪽에 문제가 있거나,‍ 정말 그런 걸 필요로 하거나‍ 좋아하는 게 아닌데도요.‍ 즐기는 게 아닐 수 있죠.‍ 때론 넌더리가 나기도‍ 하지만, 저항하거나‍ 제어할 수 없어요. (네)‍

식욕도 마찬가지예요.‍ 주방에서 떨어져 있으면‍ 별로 먹고 싶지 않겠죠.‍ 허나 주방에 있다가‍ 음식을 보면‍ 분명 먹고 싶어질 거예요.‍ 집에 있으면‍ 이런저런 걸 살 필요를‍ 못 느낄 텐데, (네)‍ 일단 쇼핑몰에 들어가면‍ 다 필요해 보이거든요.‍ 오늘은 아니더라도‍ 내일은 필요할 거야 하며‍ 그냥 사서 집에 두죠.‍ 필요할 때 쓴다면서요.‍ 그렇죠? 좀 이상하죠.‍ TV 광고비는 무척 비싸서‍ 분 단위가 아닌 초 단위로‍ 비용을 매겨요. (네)‍ 광고는 효과가 있으니까요.‍ 때론 뭘 먹고 싶지 않아도‍ 매일 TV를 보면‍ 광고에서 계속 이러죠.‍ 『맛있네, 맛있어, 이 초콜릿이 제일 맛있어!』‍ 그럼 언젠가는 『맛있네, 맛있어』를 흥얼거리다가‍ 그걸 사서 먹어보게 되죠.‍ 근데 맛이 없으면‍ 『거짓말이었네!』 하겠죠.‍ 그래도 속아서 먹게 돼요.‍ 그런 식이라면‍ 전 세계에서 속는 사람이‍ 얼마나 많겠어요? 알아요?‍ 많죠. 매일 사람들이‍ 번갈아 속아 넘어가죠.‍ 그럼 그 제품은 잘 팔리죠.‍ 얼마나 많은 사람이‍ 매일 TV를 보면서‍ 『맛있네, 맛있어』를 하겠어요.‍ 모두 영향을 받죠.‍

그러니 수행에서‍ 별로 진보가 없다고‍ 여겨지는 사람들은‍ 단체 명상을 할‍ 장소를 찾아봐요.‍ 특히 영적 수행에 좋은‍ 조용한 장소를요.‍ 모두가 같은 목표를 갖고‍ 한다면 더 낫죠.‍ 혹은 시간이 난다면‍ 조용한 장소를 찾아‍ 혼자 또는 함께‍ 수행을 하세요.‍ 두 사람이 왔다면‍ 거리를 유지하고‍ 음식도 따로 하세요.‍ 함께 어울리면‍ 『수다』를 떨게 되잖아요.‍ 그러다 시간이 가면‍ 퍼뜩 깨닫죠.‍ 『아! 오늘 명상을 안 했네』‍ 명상할 때는 시간이‍ 참 더디게 가는데,‍ 수다를 떨 때는 시간이‍ 빠르게 가죠. 참 이상하죠!‍ 그래서 문제인 거죠.‍ (네)‍

내가 이런 비결과 다른‍ 많은 비결을 알려줬잖아요.‍ 그것들을 따르지 않으면‍ 문제가 더 생길 거예요.‍ 그런 욕망이 나타날 때‍ 제어할 수 없으면,‍ 이렇게 자문해보세요.‍ 『누가 그걸 필요로 하지?』‍ 『나는 그게 왜 필요하지?』‍ 자문이 아니라‍ 탐구하며 확인하는 거죠.‍ 연관된 사람을 확인하세요.‍ 그러면 나중에 사라져요.‍ 필요로 하는 사람은 없고‍ 그저 습관일 뿐이죠. 그런 거죠.‍

그러니, 영적 수행에는‍ 많은 면이 있어요.‍ 보시도 있고, 지계와 인욕도 있고‍, 정진, 선정, 지혜도 있어요.‍ 허나 불보살의 축복이‍ 있어야 하는 게‍ 가장 중요해요.‍ 혼자선 못 올라가죠.‍ 난 이 점을 진정 깨달았어요.‍ 겁주려는 게 아니에요.‍ 물론 영적 수행에선‍ 자신에게 의지해야 하죠.‍ 『자신에게‍ 의지한다』는 건 뭘까요?‍ 신실해야 한다는 거죠.‍ 부지런히 노력해야 하고요.‍ 늘 내면의 본성, 내면 부처의 힘을‍ 기억해야 한다는 거예요.‍ 그런 거예요.‍ 하지만 늘 신의 도움을‍ 성심으로 구해야 해요.‍ 그게 바로 신이나 부처, 진아라고 하는 건데‍, 그건 우리 모두의‍ 내면에 있어요.‍ 허나 혼자 영적 수행을‍ 할 수 있다고 여긴다면,‍ 그건 여전히 마음, 에고가 그러는 거예요.‍ 그래서 안 되는 거죠.‍ 계율을 철저하게 지키면‍ 많은 걸 성취할 거라고‍ 여기기도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아요.‍ 또 명상을 많이 하고‍ 엄청난 노력을 기울이면서‍ 분투하면 뭔가를 성취할‍ 거라고 여기는데, 아녜요!‍ 그것도 아니에요.‍ 오늘은… 뭘 말하려고‍ 했는지 잊었네요.‍ 얻으면 얻는 거고,‍ 못 얻으면‍ 못 얻는 거죠.‍

누가 잘하고,‍ 누가 열심히 수행하는지‍ 아닌지는 알 수 없어요.‍ 내면의 지극한 성심은‍ 밖의 사람들에게는‍ 보이지 않죠.‍ 자신의 마음으로‍ 그걸 잴 수도 없고요.‍ 진정 신실하다면‍ 진아와 연결될 거예요.‍ 저절로 신실해지죠.‍ 즉 진아가 신실하면‍ 절로 나타난다는 말인데‍, 그럼 때가 됐을 때‍ 본향으로 가게 되죠.‍ 그럴 때만 부처의 축복‍ 혹은 신의 은총을‍ 얻었다고 할 수 있어요.‍ 안 그럼 자신이 정말‍ 훌륭하다고 말할 수 없죠.‍

난 영적 수행자들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읽었는데,‍ 누구는 이렇게 수행하고,‍ 누구는 저렇게 수행했는데‍ 모두 도를 얻었어요.‍ 가령 인도에 있었을 때‍ 이른바 깨달은 스승을‍ 많이 만났는데‍, 그들은 업을 안 만들려면‍ 스스로 벌어서‍ 살아야 한다고 했어요.‍ 그래야 도, 큰 깨달음에‍ 이를 수 있다고 했죠.‍ 그런 다음, 나는 출가한 이들도 봤어요.‍ 그들은 돈도 안 벌고‍, 선행도 안 하고,‍ 늘 걸어 다니면서‍ 누구를 만나고,‍ 이런저런 사람을 찾아가고‍ 혼자 수행을 했는데‍ 역시 같은 걸 성취했죠.‍ 그러니 뭐가 낫다 할 수 없죠.‍ 정말 이상해요!‍ 어떤 이들은 극단적인‍ 고행을 해요. 아주 엄격하게‍ 비건 밀크만 마시고‍ 때론 며칠 동안‍ 비건 밀크만 마셔요.‍ 열흘이나 열흘 이상, 20일 이상도 단식하죠.‍ 그래도 성취해요.‍ 때론 하루에 한 끼를‍ 먹어도 성취하고요.‍ 또는 조용한 곳에 가서‍ 수행을 하는데‍, 혹한의 날씨에도‍ 아무것도 걸치지 않죠.‍ 몸을 덮을 게 없다는 말이죠.‍

성불을 했다고 알려진‍ 한 출가자가 있었어요.‍ 빛이 나는 그의 몸을‍ 누가 봤다고 했거든요.‍ 몸에서 빛이 난다고요.‍ 그래서 깨달은 사람이라고‍ 여겨졌던 거죠.‍ 증거가 있으니까요.‍ 그는 출가할 때‍ 아내와 자식도 있었어요.‍ 집에 돈도 없었는데‍ 그냥 다 버리고 출가했죠.‍ 완전히 모든 걸‍ 개의치 않았어요.‍ 가족한테 돈이 없는데도‍ 개의치 않고 출가했어요.‍ 출가한 뒤‍ 이런저런 스승을 찾아가서 수행을 했고,‍ 깨달은 스승이 전수해 준 진언을‍ 독송하는 수행법으로‍ 수행을 했어요.‍ 혼자 배워서 독송을 한 건‍ 아녜요. 그러면 소용이 없죠.‍ 정말 그래요.‍ 때론 마시기만 하고,‍ 때론 몇 주간 단식하며‍ 동굴에 혼자 앉아 있었는데‍ 몸을 피할 곳이 없었어요.‍ 비가 오고 바람이 불면‍, 추위에 떨고 비에 젖었어요.‍ 흠뻑 젖었지만‍ 여전히 밤낮으로 앉아‍ 신경 안 쓰고 미동도 안 했죠.‍ 어떨 땐 정말 무더웠고요.‍ 신발도 없이 맨발로‍ 인도의 길을 걸었어요.‍ 여름의 불볕 더위에요.‍ 신발을 안 신으면 땅바닥이‍ 뜨거워서 발이 화상을 입고‍ 또 발에 물집이 생기죠… 많은 이들이 그랬죠!‍ 가봐서 내가 알아요.‍

사진: 현재에 머물며 현재를 돌보세요;‍ 과거와 미래는 여기에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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